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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국민 '되치기'했다"... 커피값 걱정에 캡슐 쟁여놓는 美소비자들 [쓸만한 이슈]

파이낸셜뉴스 2025.07.14 08:00 댓글 0

트럼프 '관세 서한' 부메랑 맞는 美 국민들
'밥상 물가' 걱정에 의류·신발 가격도 인상
구리 '관세 50%' 현실화 땐 도미노 폭탄


미국 대형마트 진열대. /사진=연합뉴스
미국 대형마트 진열대.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딸 아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더 이상 인형을 줄 수 없게 됐다. 커피는 더 이상 기호식품이 아니고 아들이 좋아하는 메로나 아이스크림은 살 때마다 부담이 됐다. 집값은 오르고 가전제품은 구매하려면 결심이 필요하게 됐다."

이 얘기는 미국의 가정에서 '언젠가' 발생할지 모를 허구다. 그 허구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 국가들에 서한을 발송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한국과 일본 등 14개국에 25∼40%의 국가별 상호관세율을 적시한 관세 서한을 보냈다. 이틀 뒤인 9일에도 필리핀 브라질 등 7개국에 추가 관세 서한을 보냈다. 구리에 50%의 관세를 부과할 거라는 예고도 했다. 12일엔 유럽연합(EU)과 멕시코에 각각 30%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상호관세 발효 시점은 모두 8월 1일이다.

미 현지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예고가 나올 때마다 미국 국민들이 '되치기' 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수입품에 부과될 관세가 높아지면서 가격이 인상되면 그 부담이 고스란히 미국의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얘기다. 그중에서도 첫 손에 꼽은 게 먹거리였다.

ABC뉴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10일 트럼프 대통령의 브라질 관세 인상 소식을 전하면서 커피, 오렌지주스, 소고기 물가 인상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중 미 현지 언론이 걱정한 건 커피 가격이었다. FT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주요 커피 수입국은 브라질이다. 지난해 전체 커피 수입량의 20%에 해당하는 20억 달러(약 2조7590억원) 상당의 커피를 브라질에서 수입했다.

미국의 커피가격 인상에 영향을 줄 나라는 브라질 뿐만이 아니다. 백악관이 20%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의 잠정 무역 협정을 체결한 베트남도 미국의 커피 가격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CNBC는 베트남이 미국에 약 8%의 커피 생두를 공급한다고 전했다.

커피값만 오르는 건 아니다. 브라질 관세 부과로 오렌지주스와 소고기 가격 인상 가능성도 제기됐다. 브라질은 미국에서 판매되는 오렌지 주스의 절반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지난 1~5월 미국의 브라질산 소고기 수입량도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17만5063t이었다. 미국 전체 수입량의 21%에 해당한다. 브라질산 소고기는 햄버거 패티의 주재료라 햄버거 가격도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건강 관련 콘텐츠를 소개하는 온라인 매체 '잇디스낫뎃'은 트럼프의 관세 인상으로 가격이 오를 11가지 식품도 소개했다. 눈길을 끄는 건 미국 사람들에게 K-푸드로 인기몰이 중인 한국 식품이 다수 포함됐다는 점이다.

수입 냉동 과일 디저트로 분류되는 빙그레 메로나, 커클랜드에서 유통하는 한국의 구운 김은 미리 구매해 두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신라면, 불닭 볶음면 등 인기있는 인스턴트 라면 제품이 농심 등 한국 기업의 제품인 만큼 이 역시 식료품 저장실에 비축해 두는 게 좋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발 '관세 전쟁'이 본격화한 지난 3월 LA 시내 코스트코 매장에서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는 중국산 자동차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발 '관세 전쟁'이 본격화한 지난 3월 LA 시내 코스트코 매장에서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는 중국산 자동차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먹거리만 가격이 오를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ABC방송은 신발과 의류 가격 상승이 불을 보듯 뻔할 거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의류, 신발 공급처인 방글라데시와 캄보디아에 각각 35%, 36%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한 데다 지난주 무역 협정을 한 베트남에도 20% 관세를 부과하기로 해서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 경제학과 카일 핸들리 교수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옷에 붙은 태그를 보면 이들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옷과 신발 가격이 오르는 건 자명한 일"이라고 했다.

오는 크리스마스 때 자녀에게 선물로 줄 장난감이 부족할 거라는 우려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장난감의 약 80%는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에 145%의 초고율 관세를 매기겠다는 데서 한 발 물러서 지난 6월 잠정적 합의 이후 30%로 낮춘 상태다.

‘K뷰티’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산 화장품도 가격 인상이 예상되는 품목 중 하나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게 50%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구리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구리는 철, 알루미늄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소비되는 금속이다. 전력망부터 자동차, 가전제품, 건설 등 다양한 산업의 필수 소재로 쓰이기 때문이다.

핸들리 교수는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하드웨어 매장에서 판매하는 물건 중 상당수가 구리로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그 중 전기차가 받을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국제구리협회가 2017년 공개한 보고서를 보면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필요한 구리의 약 4배에 해당하는 83㎏의 구리가 필요하다.

뉴스위크지는 구리값 상승이 건축 시장에도 부담을 줄 거라 예측했다.

부동산 전문 사이트인 리얼터닷컴의 조엘 베르너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배관, 난방 및 환기 시스템(HVAC) 등 주택의 다양한 곳에 구리가 사용돼 주택 건설 비용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며 "구리값이 오르면 새 집을 짓는 비용도 올라 시장에 나오는 새 집은 줄어들고 이는 주택 가격 상승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발 관세 폭탄의 충격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거라는 암울한 전망을 언론만 하는 건 아니다.

예일 예산연구소(TBL)는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까지 제안한 관세로 인해 올해 미국 내 일반 가구가 추가로 써야 할 비용이 2400달러(약 332만원) 정도 될 것으로 추산했다. TBL은 미국 경제와 관련된 정책을 심층 분석해 제공하는 정책 연구 센터다.

센터는 지난 9일까지 시행된 모든 미국 관세 및 해외 보복 조치의 영향을 분석했다. 미-베트남 무역 체계, 구리에 대한 50% 관세와 7~9일 발표된 국가들의 관세율이 확정될 거라는 가정에 따랐다.

TBL은 수입 품목의 관세율이 오르면서 물가도 단기적으로 1.8% 상승하는 효과를 볼 것으로 추산했다. 2025년 기준 가구당 평균 2400달러의 소득 손실에 해당한다.

실질 GDP 성장률은 관세 인상 전보다 -0.7%p를 기록하고 장기적으로는 0.4%p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노동 시장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봤다. 실업률은 2025년 말까지 0.4%p 올라가고 임금 고용은 55만3000명 줄어들 것으로 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서한을 발송하면서 세계가 들썩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 내 시장 움직임은 잠잠하다. 지난 4월 2일 상호 관세 발표 때 마트에서 화장지, 식품 등 사재기에 나섰을 때와도 큰 차이를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참모가 스무번 넘게 관세 관련 발언을 뒤집다 보니 미국의 소비자들이 피로감을 느낀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미국의 소비자들이 이미 자구책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내 한인사회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20년 가까이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40대 주부 김모씨는 "지난 4월 상호 관세로 물건값이 오를 거라는 얘기를 듣고 냉장고를 샀다. 지인들 중엔 자동차를 교체한 분도 있다"면서 "이미 구매할 건 구매했기 때문에 최근 커피 캡슐을 추가로 산 것 빼고는 없다"고 말했다.

한인 커뮤니티에는 "한국화장품 기초랑 클렌저 제품들 저렴해서 자주 쓴다. 가격이 오를까 싶어 이미 쟁여놨다"거나 "김은 유통기한이 1년이기 때문에 대형 마트에 가서 대량 구매해 놨다"는 글들도 보였다.

관세 인상 등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미국 소비자들이 아예 지갑을 닫기도 했다.

지난 7일 야후파이낸스 의뢰로 마리스트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인 10명 중 8명은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 미국 경제의 불투명한 전망 때문에 지출 계획에 변화를 줬다고 답했다. 이 조사는 지난 5월 28~31일 사흘간 성인 20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의류, 가전제품 구입과 여가에 지출을 가장 많이 줄이기로 했다. 장난감이나 뷰티·웰빙 제품, 식료품, 가정용품 구매 계획도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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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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