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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視角] 성과급 1억이 몰고 온 나비효과

파이낸셜뉴스 2025.09.17 19:02 댓글 0

전용기 산업부장·산업부문장
전용기 산업부장·산업부문장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는 합의안을 내놓았다. 직원 1인당 약 1억원. 숫자만 놓고 보면 파격이고, 반도체 업계는 물론 한국 산업계 전반에서도 이 정도 보상은 흔치 않다. '통 큰 결정'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단순히 돈을 더 주는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반도체 고급인력을 붙잡아 두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여론의 반응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뉴스가 나오면 "배 아프다"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의대 쏠림이 심한데 저 정도는 줘야 공대생들이 간다" "의사보다 잘 버니 좋은 현상"이라는 반응이 잇따른다. 대기업 직원의 과도한 보상으로 보이던 것이, 이제는 이공계 인재 확보를 위한 필수 유인책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엔지니어가 대접을 받지 못하면 대한민국 제조업의 버팀목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KBS 다큐멘터리 '인재전쟁'이 던진 메시지는 뼈아프다. 1부 '공대에 미친 중국', 2부 '의대에 미친 한국'에서 중국 현지의 '이공계 열풍'을 생생하게 전했다. 중국은 매년 2000만명의 대학 지원자 가운데 최정예 1200명을 뽑아 국가 주도의 과학기술 인재로 키우는 반면, 한국은 20년째 의대 쏠림현상에 사로잡혀 있다. 초등학교 단계부터 '의대반'이 등장하고, 수학·과학 영재들이 줄줄이 의료계로 빨려 들어간다. 신은주 PD의 "끝까지 마음에 두었던 건 이 다큐멘터리를 본 공대 지망생들이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는 말은 그래서 더 씁쓸하다.

이런 현실에서 SK하이닉스의 파격 보상은 그 자체로 시대적 메시지다. '공대가 의대보다 낫다'는 사회적 신호를 기업이 대신 보여주는 셈이다. 반도체라는 전략산업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인재에게 1억원의 성과급은 결코 과하지 않다.

이 소식은 동시에 삼성전자를 흔들었다. 삼성전자는 1·4분기 D램 시장점유율이 지난 1992년 이후 처음 2위로 밀려났고,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선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에 밀려 고전하는 데다 성과급마저 SK에 뒤처지게 됐다. 삼성전자 초기업 노조는 경영진에 보낸 공문에서 "삼성전자는 여전히 투명하지 않은 EVA(Economic Value Added·경제적 부가가치) 방식으로 성과급 제도를 고수하고 있다"며 "직원 누구도 어떻게 계산되는지 알 수 없는 '깜깜이 성과급 제도'"라고 주장했다.

유하람 삼성디스플레이 열린지부장은 "이건희 회장도 '성과급은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라고 강조해 왔다"면서 "SK하이닉스 구성원들은 더 높은 실적을 내자며 '쉬지 말고 일하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쟁사보다 더 열심히 일할 테니 이에 걸맞은 보상을 해 달라는 외침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지난 3월 "성과는 확실히 보상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신상필벌이 우리의 오랜 원칙"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기술 초격차 전략 재가동뿐만 아니라 성과급에서도 초격차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부러움과 시샘을 받을 정도의 보상이 뒤따라야 중국에서 불고 있는 이공계 열풍이 한국에서도 확산될 수 있다. 이는 국가의 운명과도 연결된 문제다.

지난 7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한상의 하계포럼에서 던진 경고는 너무 적나라해서 무서울 정도다. 최 회장은 "10년 전부터 많은 사람이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면서 "인공지능(AI)의 시대인데, 제조업이 AI를 기반으로 다시 도약하지 못하면 향후 10년 내 상당 부분이 퇴출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인재가 의대로 빨려 들어가는 구조가 고착화된다면, 제조업의 미래는 없다. '공대가 의대보다 낫다'는 신호를 사회가 보여주지 않는 한 '잃어버린 10년 시즌2'는 예견된 미래다.
#SK하이닉스 #의대 #이공계 #성과급 #쏠림현상


courage@fnnews.com 전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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