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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과 ‘이날치’가 온다… 국립극장, 한국적 서사로 연말 공연계 달군다

파이낸셜뉴스 2025.11.17 17:47 댓글 0

'이날치전' 드레스 리허설 때 '이날치' 역의 김수인(가운데). 국립극장 제공
'이날치전' 드레스 리허설 때 '이날치' 역의 김수인(가운데). 국립극장 제공

[파이낸셜뉴스] 늦가을, 국립극장이 전통의 뿌리를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린 두 편의 우리 소리 공연을 내놓는다. 시대의 영웅 홍길동을 마당놀이 특유의 활력으로 재창조한 ‘홍길동이 온다’와 조선 후기 명창 이날치의 삶을 유쾌한 이야기판으로 풀어낸 창극 ‘이날치傳’이 연달아 무대에 오르며, 한국 공연예술이 지닌 서사·소리·놀이의 힘을 다시 한 번 보여줄 예정이다.


기획공연 마당놀이 ‘홍길동이 온다’는 오는 28일부터 2026년 1월 31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선보인다. 국립극장 마당놀이는 2014년 ‘심청이 온다’를 시작으로 ‘춘향이 온다’(2015), ‘놀보가 온다’(2016), ‘춘풍이 온다’(2018~2020), 10주년 기념작 ‘마당놀이 모듬전’(2024)에 이르기까지 누적 관객 23만여 명을 기록한 국립극장의 대표 흥행 브랜드다.

‘홍길동이 온다’는 조선시대 대표 영웅 서사인 ‘홍길동전’을 마당놀이 특유의 풍자와 유머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홍길동이 겪었던 불합리한 세상을 청년실업·사회적 단절·불평등 등 오늘날의 현실 문제들과 교차시켜 풀어내며,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과거 ‘마당놀이 홍길동’의 전설적 주인공 김성녀의 뒤를 이어, 이번 작품에서는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 이소연과 국악그룹 ‘우리소리 바라지’의 김율희가 홍길동 역을 맡아 세대교체를 예고한다. 두 소리꾼은 대표 여성 소리꾼으로서 ‘젠더 프리(Gender-Free)’ 홍길동을 연기하며, 기존 영웅상에 새로운 시각을 더한다. 또한 원작에는 없던 여성 활빈당원 ‘삼충’ 캐릭터가 새롭게 등장한다. 홍길동을 동경하는 여성 활빈당원으로 조유아·홍승희가 더블캐스팅 돼 유쾌한 매력을 선보인다. 국립창극단에서 30여 년간 활약한 김학용과 창작집단 ‘깍두기’ 대표 추현종이 홍길동의 동료 ‘자바리’ 역으로 출연하며, ‘꼭두쇠’ 역은 정준태가 맡아 맛깔스러운 연기와 노래로 무대를 채운다.

‘한국형 히어로’ 홍길동과 활빈당의 활약은 공중 활공(플라잉), 마술, 아크로바틱 등 역동적인 무대와 함께 생생하게 펼쳐진다. 홍길동의 신묘한 능력을 관객 가까이에서 체험하게 해주는 마술 장면을 비롯해 홍길동이 적과 대결하는 플라잉 연출 등이 극의 박진감을 더한다. 50여 명의 배우·무용수·연주자들이 무대를 가득 채우고, 노래와 연기, 아크로바틱, 롤러스케이트 퍼포먼스까지 어우러져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는 장관을 연출한다.

이번 공연에도 마당놀이의 원조 제작진도 다시 뭉쳤다. 연출 손진책, 작곡 박범훈, 안무 국수호, 연희감독 김성녀 등 원년 멤버가 ‘홍길동전’의 재탄생을 준비 중이다. 이번에는 국악 작곡가 김성국이 새롭게 합류해 완성도 높은 음악을 선보인다.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은 오는 21~29일 창극 ‘이날치傳’을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조선 후기 8명창 중 한 명이자, 날쌔게 줄을 잘 탄다고 하여 ‘날치’라 불린 이경숙(1820~1892)의 삶을 소재로 한 창작 창극이다. 2024년 초연 당시 전통연희와 판소리가 어우러진 유쾌한 무대로 호평을 받으며 객석점유율 99%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날치傳’은 양반집 머슴으로 태어나 줄광대로 활동하다 명창의 북재비로 들어가, 온갖 수모를 견디며 귀동냥으로 소리를 익
소리꾼 이소연(왼쪽)과 김율희가 2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린 국립극장 마당놀이 '홍길동이 온다' 기자간담회가 끝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소리꾼 이소연(왼쪽)과 김율희가 2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린 국립극장 마당놀이 '홍길동이 온다' 기자간담회가 끝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힌 끝에 명창의 반열에 오른 이날치의 일대기를 그린다. 극본을 맡은 윤석미 작가는 역사서 속 인물의 단편적 기록에 상상력을 더해 서사를 새롭게 구성했다.

연출을 맡은 정종임은 다시 한 번 우리 전통예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신명 나는 놀이판을 펼친다. 판소리뿐 아니라 남사당패 풍물놀이, 재담, 줄타기, 고법, 탈춤 등 다채로운 전통연희가 어우러지며, 판소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창극을 구현한다. 특히 무대 위에서 실제로 펼쳐지는 아찔한 줄타기 묘기는 이 작품의 백미로 꼽힌다.

음악은 주요 눈대목을 포함해 우리 소리의 흥과 멋을 풍부하게 담아낸다. 작창을 맡은 윤진철은 옛 판소리의 성음과 발성 등 고제(古制) 요소를 더해, 당대 명창들의 개성을 살리며 소리를 짰다. 박만순, 송우룡, 김세종, 박유전 등 조선 후기 8명창이 소리로 기량을 겨루는 ‘통인청 대사습놀이’ 장면은, 마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힙합의 랩 배틀처럼 역동적이고 속도감 있게 구성돼 흥을 더한다. 이날치가 부르는 ‘심청가’ 중 ‘심청이 물에 빠지는 대목’에서는 이최응 앞에서 목숨을 걸고 소리를 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 처절하면서도 애절한 소리가 관객의 마음을 깊이 울린다. 작곡가 손다혜는 가야금·거문고·대금·해금·피리·아쟁·모듬북 등의 국악기와 신시사이저·어쿠스틱 기타 등의 서양 악기를 조화시켜 극의 몰입도를 한층 높였다.

무대는 ‘소리판’이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지름 10m의 원형 바닥은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나무의 나이테나 사람의 지문을 연상케 하는 무늬를 통해 시간이 켜켜이 쌓인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이날치의 삶에 얽힌 굴곡과 변화무쌍한 여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주인공 ‘이날치’ 역은 초연에서 맹활약한 국립창극단의 젊은 소리꾼 이광복과 김수인이 더블 캐스팅됐다. 이날치의 의형제이자 조력자인 ‘개다리’ 역은 최용석이 맡으며, 극의 흐름을 이끄는 재치 있는 입담의 ‘어릿광대’는 서정금이 연기한다. 이 외에도 국립창극단 단원을 비롯해 줄타기꾼, 전통연희꾼 등 총 40여 명이 함께 출연해, 유쾌하고 신명나는 놀이판을 완성한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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