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전산센터 설립 당시에는
실시간 백업 시스템 정상 작동
성과 위주 데이터센터 정책 매몰
대전 본원 구조·기술적 부적합
행안부도 재해 복구 투자 소홀
2023년 초유의 행정전산망 장애를 겪은 뒤 2년 만에 '국가 전산망의 심장'이 다시 멈췄다. '세계 최고 전자정부' 위상도 허울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 초유의 전산망 마비 사태를 겪고 있는 한국은 지난해 말 유엔 전자정부 평가에서 3회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9월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정부 데이터센터 운영방식은 애초 원칙과 실제 운영형태가 달랐고, 재해복구(DR) 시스템은 예산낭비라며 번번이 미뤄지는 등 디지털행정 곳곳에서 허점투성이 민낯을 드러냈다. 세계 최초라 자부하던 대한민국의 디지털정부는 이제 효율과 비용절감 신화가 아니라 위험과 불안의
대상이 됐다. 2005년 행정 디지털화로 세계에서 가장 편리하고 빠른 대국민 서비스를 표방한 '대한민국의 자랑'이 단순 효율에서 복원력으로, 국민의 걱정에서 믿음직한 행정서비스로 바로 설 수 있는 길을 찾는다.
■"데이터 집중 리스크 보완책 있었다"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얼마나 빠르게, 안전하게 복구하느냐다." 올 들어 기업들의 사이버 침해사고가 잇따르더니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부의 디지털행정이 멈췄다. 배터리 교체 과정의 불씨 하나가 전국을 멈춰 세웠다. 사고 위험은 급속히 커지고 있지만, 이를 예방하고 복구하려는 노력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 이번 국정자원 화재 사고의 핵심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지난 2005년 출범 당시부터 우려점으로 꼽힌 데이터센터 집중으로 인한 취약점이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이는 통합전산센터 기획 단계에서부터 우려 대상이었고, 이를 해결할 대책도 마련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지난 2004년 정부통합전산센터 기획에 참여한 한 고위 공무원은 "통합전산센터 기획 당시부터 데이터 집중에 대한 취약점을 알고 있었고, 당연히 해결방안도 있었다"며 "통합전산센터 구축에서 백업체계와 DR시스템 구축은 필수과제로 제시됐었고 계획과 예산이 마련됐었다"고 밝혔다. 문제는 실제 센터 운영 단계에서 이를 적용하지 않은 것이다. 2004년 당시 전자정부 위원으로 정부통합전산센터 건립 추진위원장을 지낸 정태명 전 성균관대 소프트웨어대학장(현 히포티앤씨 대표)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국정자원 전신인 정부통합전산센터 건립 당시 대전 본원과 광주 센터 간 실시간 백업 시스템이 정상 작동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낡은 전화국 건물 빌려쓰는 '디지털행정의 심장'
전문가들은 기초적인 부분은 외면한 채 성과 위주 정책을 펼쳐온 정부 데이터센터 정책을 질타한다. 특히 국정자원 본원이 데이터센터로 설계되지 않은 건물을 전산시설로 활용해왔다는 사실도 도마에 올랐다. 정부통합센터는 대전·광주·대구 3중 체계와 공주 재해복구센터를 통해 한곳에 문제가 생기면 즉시 다른 곳에서 서비스를 이어받는 '무중단 시스템'을 자랑해 왔다. 그러나 단 한 번의 화재로 정부의 행정서비스가 일시에 중단되면서 국정자원의 백업 시스템 및 네트워크 운영이 그간 정부의 큰소리와는 다르게 운영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대전 본원은 데이터센터로는 구조적·기술적으로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행정안전부는 이를 무시하고 20년 장기임차 이후 계약 연장만 반복하며 실질적인 대체방안 마련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다 화를 키웠다는 주장이 나왔다. 업계에 따르면 국정자원 대전 본원은 대전 유성구
KT 제1연구소 건물 리모델링 시설이다. 20년간 장기임차 후 올해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국정자원은 크게 문제가 없다고 보고 사용기간을 연장, 오는 2030년 8월까지 사용키로 최근 계약을 갱신했다.
■재해복구 예산은 '삭감 대상'(?)
행안부의 안일한 대응도 문제다. 2023년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를 겪은 뒤 DR시스템 구축과 운영에 대한 시급성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행안부는 지난해 4월 각 부처에 '1·2등급 DR구축 투자 금지'라는 예산 가이드라인을 내렸다. 국민의 이용이 많고, 중요성이 높은 순서로 매긴 1·2등급 행정서비스에 DR구축을 멈추라는 신호다. 이에 대해 행안부는 "장애 발생 후 즉각 백업시스템이 가동되는 액티브·액티브 시스템을 도입하는 시범사업을 계획 중이어서 주요 시범사업 후 2026년부터 본격 투자하겠다는 방침이었다"고 설명했다. 예산절감이라는 덫이 디지털 서비스 운영의 핵심인 DR을 뒷전으로 밀쳐낸 셈이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내년(2026년)도 이중화 예산이 충분치 않다"며 "국회에서 증액해주면 기획예산 당국과 협의하고, 부족하면 예비비라도 투입하겠다"며 여전히 소극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분산형 인프라 구축을 통해 다중 데이터센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단일센터 의존을 탈피하고, 지역별로 분산된 백업센터를 구축해 장애 발생 시 자동전환이 가능하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민간 클라우드와 공공 클라우드를 병행 활용, 유연성과 확장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힘이 실린다.
ktitk@fnnews.com 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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